이름보다 늦게 남는 비용과 책임을 따라가 본 하루.
휴일로 넘어가는 날이면 조금 느슨해져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런 날은 더 분주하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게 아니다. 마음이 앞선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넘기기도 전에 손이 휴대폰으로 간다. 화면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붙든다. 먼저 뜨는 건 이름이고, 오래 남는 건 비용이다. 내가 보기엔 오늘 하루도 그 순서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새벽 첫 화면에서 제일 먼저 눈에 걸린 건 신현송이라는 이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2일 신현송 BIS 통화경제국장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명했고, 같은 날 부동산 정책의 논의와 입안 과정에서 다주택자와 비거주 고가주택 소유 공직자를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장면은 늘 강하다. 사람은 상징에 먼저 반응한다. 누가 왔는지, 누가 빠졌는지, 누구에게 칼날이 겨눠졌는지부터 본다. 다만 내 경험상 생활은 거기서 한 박자 늦게 시작된다. 총재 후보 지명이 정말 물가를 누를 수 있을지, 이해관계 배제가 실제 정책의 결을 바꿀지, 결국 묻는 건 그다음이다. 나는 싱크대 옆에 있던 부동산 전단을 한 번 접어 서랍에 넣었다. 오늘은 매물 가격보다 정책을 만지는 손의 방향이 더 신경 쓰였다.
조금 지나자 화면의 무게중심은 전쟁추경으로 옮겨갔다. 당·정·청은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해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편성하기로 했고, 취약계층 지원과 유류비·물류비 부담 완화, 공급망 안정 대책을 함께 내놨다. 같은 흐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을 48시간 안에 전면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소를 타격하겠다고 경고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전쟁 뉴스는 늘 멀리서 시작하는데, 생활은 꼭 가까운 데서 끝난다. 주유소 가격표, 전기요금 고지서, 배송비, 장바구니 품목 같은 데서다. 이런 날 국가는 추경을 짜고, 개인은 품목을 지운다. 그 간격이 나는 늘 조금 서늘하다. 그래서 냉장고 문에 붙은 장보기 메모에서 수입 과일 하나를 먼저 뺐다. 대단한 절약은 아니어도, 이런 날은 괜한 우회로 하나를 지우는 일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점심 무렵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소식이 다시 올라왔다. 북한은 22일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사회주의 헌법 수정·보충 문제를 안건에 올렸고,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더 분명히 못 박을지에 시선이 쏠렸다. 다만 실제 개정 내용이 어느 수준까지 공개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분석도 함께 나왔다.
이런 뉴스는 언제나 크고 단단한 말로 들어온다. 하지만 그럴수록 민생은 뒤로 밀린다. 긴장이 커질수록 사람은 생계보다 구호를 먼저 듣게 된다. 내가 보기엔 이게 늘 답답하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일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지만, 그 말들이 결국 환율과 비용과 불안으로 번져 우리 일상에 내려온다는 점은 자주 뒤로 밀린다. 그래서 나는 리모컨을 집기 전에 창문부터 한 번 닫았다. 바깥의 큰 언어보다 내 생활의 작은 틈을 먼저 막고 싶었다.
그 무렵 대전 공장 화재의 숫자는 다른 기사보다 더 오래 남았다.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로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고, 사망자가 집중된 공간 중 일부는 당초 설계도면에 없는 무허가 복층 구조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큰 사고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경고가 있었는데 흘러가고, 피난로가 있었는데 막히고, 도면에 없던 공간이 관행처럼 굳어진다. 사고가 새롭다기보다 구조가 익숙하다. 그래서 사람은 애도는 크게 하고 점검은 작게 하는 쪽으로 자꾸 기운다. 나는 공장 다니는 조카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출입문보다 비상구를 먼저 다시 보라고. 내 경험상 이런 날 필요한 건 거창한 위로보다 손이 바로 움직이는 확인 한 번일 때가 많다.
오후 화면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복잡했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3.1%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했고, 4월 집회 뒤 5월 총파업까지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야구 쪽에서는 한국 대표팀이 2009년 이후 17년 만에 WBC 8강에 올랐지만, 대회를 마친 뒤엔 다시 각 구단의 시즌 준비로 흩어졌다.
같은 화면에 산업과 스포츠가 붙는 날이 있다. 응원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노동 갈등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런데 회사가 좋아진다는 말과 일하는 사람이 덜 답답해지는 일은 자주 따로 간다. 그게 늘 문제다. 들뜸은 빠르고, 조정은 느리다. 나는 선반 위의 오래된 글러브를 한 번 쳐다보다가 다시 올려뒀다. 반가운 기분은 챙기되, 흥분까지 앞세우지는 말자 싶었다.
저녁이 되자 광화문 화면이 하루의 톤을 또 바꿨다. BTS는 3년 9개월 만의 완전체 무대를 광화문에서 열었고, 글로벌 생중계는 190개국으로 송출됐다. 인파는 주최 측 추산 10만4천 명, 행정안전부 시스템 추산 6만2천 명으로 차이가 있었고, 공연 뒤에는 과잉 예측에 따른 공무원 과다 동원 논란과 안전 통제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나는 이런 장면을 좋아한다. 분명 사람을 숨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다만 문화의 힘을 말할수록, 그 현장을 둘러싼 행정의 방식도 같이 봐야 한다고 느낀다. 박수는 쉬운데 책임은 늘 늦게 온다. 이태원 이후 한국 사회가 안전에 예민해진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예측이 실제를 자꾸 크게 앞질러 갈 때, 행정은 시민을 지키는 일과 과하게 통제하는 일 사이에서 다시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나는 저녁상을 물리며 리모컨 볼륨을 두 칸 낮췄다. 화려한 장면을 보되, 그 장면이 가린 그림자까지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 쪽에서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가 개봉 첫날 북미에서 3천310만 달러 안팎을 벌어들이며 강하게 출발했고, 개봉 주말 북미 성적은 약 8천50만 달러로 집계됐다. 당초 주말 예상치 7천700만 달러 안팎보다 더 높은 수치였다.
이 대목도 나는 좀 흥미롭게 봤다. 사람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큰 이야기, 더 먼 우주, 더 선명한 영웅서사에 잠깐 기대고 싶어진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위로가 위로로 남으려면 현실의 금을 완전히 지워버리면 안 된다.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사람을 다른 데로 데려가지만, 불이 꺼지면 결국 다시 자기 집과 자기 영수증과 자기 일터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도 한동안 냉장고 문을 괜히 한 번 더 열어봤다. 오늘 하루가 어디서부터 나를 눌렀는지 확인하듯이.
오늘의 핵심은 많이 검색된 이름이 아니었다. 늦게 남는 책임이었다. 신현송 지명도, 다주택 공직자 배제 지시도, 전쟁 대응 추경도, 북한의 강한 언어도, 대전 화재도, 삼성전자 노조의 쟁의도, BTS의 환호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내려온다. 누가 오래 책임질 것이냐는 질문이다. 이름은 빨리 뜬다. 하지만 제도는 늦게 검증된다. 문화는 크게 빛나지만, 행정의 균형은 더디게 드러난다. 애도는 빠르지만 점검은 자주 늦는다. 적어도 나는 이런 날일수록 화려한 장면보다 뒤늦게 통증으로 돌아오는 지점을 더 오래 봐야 덜 흔들린다고 느낀다. 공연은 공연대로 보고, 영화 흥행은 흥행대로 반기되, 마지막엔 냉장고 문과 주유기 숫자, 일터의 비상구,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의 이해관계까지 다시 보는 쪽이 낫다. 휴일 직전의 하루는 쉬는 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준이 가장 쉽게 무너지는 시간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먼저 뜬 이름보다 늦게 아픈 책임을 더 오래 붙드는 습관이 생활을 지키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고 본다.
유의사항
이 글은 확인 가능한 보도와 공개된 수치를 바탕으로 정리한 뒤, 작성자의 개인적 견해를 덧붙여 쓴 칼럼입니다. 같은 뉴스라도 주거 형태, 이동 방식, 업종, 소득 구조에 따라 체감은 다르게 올 수 있습니다.
